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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공부할 외우는 하나죠?

여기서 특이한 2명이 있습니다.

바로 연산군과 광해군이죠.

 

군이라는 칭호는 여러 가지 이유로 붙이는데요.

보통 반정 때문에 왕위에서 내쫓겨 왕자의 신분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붙였다고 합니다.

 

 

 

광해군의 결말, 인조반정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영상부터 보고 시작할까요?

 

영상 속으로 gogogo~

 

 

 

 

 

 

 

인조반정은 1623 일어납니다.

 

 

 

 

1400 병력이 반란군으로 궁궐을 침입했어요.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반란군의 숫자로는 매우 적은 수.

 

반란군은 창의문을 열고 들어와 광해군이 있는 돈화문까지 쉽게 들어옵니다.

이유가 훈련도감의 대장인 이흥립 배신했기 때문이죠.

 

 

 

 

창덕궁은 불타고 광해군은 임금이 되는 인조에게 끌려갑니다.

광해군의 시대는 끝이 나고 인조의 시대 시작합니다.

 

 

 

 

결국, 인조반정(仁租反正) 인조가 잘못된 정치를

바로 잡았다고 하여 이름 지어지게 됩니다.

 

 

 

 

인조반정의 이유는 광해군의 실정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다른 의견으로는 신하들의 정권 다툼 때문에

광해군이 희생되었다는 주장 있어요.

 

서인과 남인 세력이 연합하여

광해군의 대북파를 몰아내고 광해군을 반란으로 끌어내렸죠.

 

 

 

 

 

여기에 김개시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김개시는 실록에 나오는 인물로 실제하는 인물이며,

선조와 광해군 명의 승은을 입은 상궁

 따라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죠.

 

 

 

 

김개시의 이름의 어원은

왕이 내려준 이름이라고 기록에 나와요.

 

하지만, 선조가 원래 내려준 이름은 가희(佳姬)라고 합니다.

뜻은 아름다운 여인

 

 

 

 

이러한 김개시도 인조반정에 도움을 주지만 결국에는 처형당합니다.

 

인조가 된 능양군에게 협조했지만

또다시 배신할 것으로 생각했어요.

새로운 정치를 시작한다는 입장에서는 처형해야만 했던 거죠.

 

 

 

 

광해의 정치적 버팀목이었던 이이첨

정서적 버팀목이었던 김개시

군사적 버팀목이었던 이흥립

 

광해가 가장 믿었던 이흥립과 김개시의 배신이

결국 인조반정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것이죠.

 

 

 

하지만 여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광해군은 인조반정이 일어난 이후 18년을 더 살았다는 사실

물론 유배 생활이었지만요.

 

강화도를 시작으로 4번이나 유배지를 옮겼고

마지막에는 제주도까지 내려갑니다.

 

 

 

오늘은 광해군의 마지막, 인조반정에 대해서 알아봤어요.

영화로도 많이 나온 광해라는 인물의 끝이 참 아쉽네요.

 

 

 

다음에도 좋은 정보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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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N 인턴 에디터 김동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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